수원 화성은 성곽 한 바퀴가 5.74km다. 걸어서 두 시간 남짓이고, 그 두 시간 동안 성문·포루·장대·정자가 차례로 나온다. 서울에서 지하철로 닿는 거리에 이만한 규모의 성곽이 온전히 남은 곳은 드물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고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이전하면서 성을 쌓았다. 1794년에 착공해 1796년 10월에 준공했으니 2년 반 남짓이다. 성곽 규모를 생각하면 대단히 빠르다.
축성 목적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점이 이 성의 성격을 만든다.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출발점이었지만, 동시에 당쟁을 끊고 왕이 직접 다스리는 정치를 펼 새 거점이 필요했고, 국방 요새로도 써야 했다. 그래서 화성은 왕릉 곁의 상징물이면서 실전용 성곽이다.
| 구간 | 볼 것 | 난이도 |
|---|---|---|
| 장안문 → 화서문 | 북쪽 성문과 평지 성벽 | 쉬움 |
| 화서문 → 서장대 | 팔달산 오르막, 정상에서 시내 조망 | 오르막 구간 |
| 서장대 → 팔달문 | 내리막, 남쪽 성문 | 보통 |
| 팔달문 → 창룡문 | 시장과 붙은 구간 | 쉬움 |
| 창룡문 → 방화수류정 | 연못과 정자, 사진 명소 | 쉬움 |
한 바퀴가 부담스러우면 방화수류정 주변만 걸어도 된다. 성곽에서 가장 이름난 자리이고 평지라 접근이 쉽다.
성곽 시설 중 가장 자주 사진에 담기는 곳이다. 정자와 연못, 물길이 한 화면에 들어와서 성곽이라기보다 정원처럼 보인다.
바로 옆 화홍문은 물이 성 안팎을 드나드는 수문이다. 방어 시설인데 무지개 모양 홍예를 일곱 개 두어 형태를 만들었다. 화성의 성격이 여기서 드러난다 — 기능을 먼저 짜고 그 위에 형태를 얹었다.
성곽만 보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행궁은 성과 한 세트다. 정조가 수원에 내려왔을 때 머물던 곳이고, 규모로는 조선 행궁 중 가장 컸다.
다만 지금 보는 건물 대부분은 복원한 것이다. 전란을 거치며 대부분 사라지고 낙남헌 정도가 원형으로 남았다. 복원 건물이라는 걸 알고 보면 오히려 무엇이 없어졌는지가 보인다.
성곽 길은 계단과 오르막이 섞여 있어 신발이 하루를 좌우한다. 챙길 것은 나들이 장비에 정리해 뒀다.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다. 등재 사유의 핵심은 동서양 기술이 만난 군사 건축이라는 점이다.
전통 축성법에 당시 들어온 서양식 축성 개념을 섞었고, 지형을 깎아 맞추는 대신 산과 평지를 그대로 살려 성을 둘렀다. 게다가 축성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무엇을 얼마에 어떻게 지었는지가 남아 있다. 이 기록 덕에 훼손된 부분을 근거 있게 복원할 수 있었다.
같은 조선 왕실 공간으로 경복궁이 있고, 성곽을 걷는 경험이 좋았다면 등산 쪽 코스와도 이어진다. 경기도의 다른 여행지는 경기도에 모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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